송하슬아 논설위원, 작가·컨텐츠 기획자

송하슬아 논설위원
송하슬아 논설위원

지난 주말 성수역 쪽에 놀러 갔을 때 10여 년 전 명동역 풍경이 기억에 스쳤다. 명동 밀리오레 인기가 한창일 때 역 앞은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어깨가 닿거나 뒷발을 밟히기도 했던 복작거림이 성수에서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성수동은 요즘 핫플(핫플레이스의 줄임말. 인기가 많아 사람들이 몰리는 동네)이다. 유명 브랜드 매장 입구마다 대기 줄을 서고 매장 안쪽도 북새통을 이룬다.

이날 탬버린즈, 조말론, 뉴믹스커피, 무비랜드, 퓌, 샤이니 키 등 최소 6곳의 팝업스토어를 방문할 심산으로 동선을 짰다. 또 성수역 앞에서 만나는 대신 먼저 도착한 사람이 탬버린즈 입장 줄을 지키기로 했다.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짧은 대화를 주고받고 각자 스마트폰을 뒤적거렸는데 날씨가 따뜻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영하의 날씨였다면 언 손을 호호 불면서 포기할지 말지 몇 번이고 고민했을지 모른다. 줄을 서는 동안 통유리창 너머로 우리가 둘러볼 공간을 미리 엿보기도 했다.

탬버린즈 향수와 핸드크림
탬버린즈 향수와 핸드크림

한층 기대감이 올라가서 입장 순서가 되자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독특하게 꾸며진 공간 인테리어와 전시를 보고 대단하다 멋지다는 감탄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넓은 공간임에도 줄을 선 채 종종걸음으로 움직여야 했지만, 기다렸던 만큼 제품을 하나라도 더 자세히 보게 되고, 카메라에 확실하게 담아두고 싶어 이리저리 찍었다. 마음에 드는 향수와 핸드크림이 보이자 바로 사야 할지 말지 마음 한편이 요란해졌다.

공간의 끝에 다다르자 또 기다림이 이어졌다. 결제하려면 구매 대기 줄을 서야 하고 사진을 찍으려면 포토존 대기 줄에 서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고, 친구와 나는 끝내 나와버렸다. 구매 대신에 물건을 온라인몰 장바구니에 담고 다음 행선지(또 다른 매장이 대기라인)로 향했다.

사람들은 줄을 서는 게 익숙해 보였다. 내색은 안 했지만 매장 앞 기다림이 어쭙잖게 여겨졌다. 평소에는 사람이 많으면 미련 없이 발길을 돌리는 편이라 친구에게 여기서 포기하자고 말하고 싶은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는 ‘오늘이 아니면 다신 없을 기회’였다.

성수에서 가려던 곳들은 모두 팝업스토어였다. 팝업스토어(Pop-up Store)는 특정 기간에만 짧게 운영하는 임시 상점을 의미한다. 인터넷에 떴다가 사라지는 팝업창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20년 전부터 소비자가 브랜드를 찾아오게 만들 새로운 놀잇감이 가득한 체험 공간 마케팅의 일종이다.

짧은 기간만 운영하는 특성상 한정된 특별한 경험을 누리려고 기다린다. 개인적으로 줄 서서 먹는 맛집 가기를 선호하지 않지만 예외적으로 평양냉면이라면 줄 서서라도 꼭 먹는 편이어서, 이번 주말 역시 평양냉면을 기다리던 마음으로 팝업의 성지 성수역을 찾았던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몰리는 성수동에서는 한 달 평균 30개가 넘는 팝업스토어가 문을 열고 닫는다. 브랜드는 핵심 상권에 소비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콘텐츠를 차려 놓고 화제를 모으고(화제성), 소비자는 평소 눈여겨본 특정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체험한다. 눈길을 끈 제품에 쉽게 지갑이 열린다(경험소비). 사진 찍고 인증하기 좋아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SNS에 인증샷을 올리면서 팝업스토어는 온라인 속 입소문으로 단기 효율을 톡톡히 누릴 수 있다. 브랜드는 높은 임대료를 감수하고, 소비자는 대기 시간을 무릅쓰는 이유다. 2025년까지 세계 팝업스토어 시장 규모는 127조 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대기시간이 긴 것으로 유명한 수프림 브랜드 앞의 풍경(이 글의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 이미지: Unsplash의 charlesdeluvio.  
세계적으로 대기시간이 긴 것으로 유명한 수프림 브랜드 앞의 풍경(이 글의 특정 사실과 관계없음). 이미지: Unsplash의 charlesdeluvio.  

사람들이 꾸준히 몰리는 서울 강남, 홍대 부근을 제외하고 중요 입지는 계속 변했다. 국내 스타벅스 1호점이 위치한 이화여대 상권, 명동, 이태원, 압구정, 여의도 등을 거쳐 요즘은 성수동이 팝업스토어 포화 지역이다. 신용산이나 신당동은 이미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들이다. 다음 핫플레이스로 과연 어떤 동네가 주목을 받게 될까? 그때에도 새로운 놀잇거리를 위해 줄을 서야 할까? 줄 대신 편리한 방도는 더 없을까? 웨이팅 문화가 보편화하면서 웨이팅 앱 캐치테이블의 월간 이용자가 300만 명 규모인 만큼 웨이팅 솔루션 앱이 반짝 인기다.

평소에는 덜 붐비고 한산한 동네를 찾아가 주로 식당과 카페를 들르는 걸 좋아한다. 줄이 없는 곳이나 예약을 통해 대기 없이 식사와 음료만 즐기는 편인데, 오랜만에 들른 성수동에서는 모든 과정에 ‘기다림’이 포함돼 있었다. 예전에는 줄이 길면 쉽게 포기하고 다른 곳에 갔는데 팝업스토어는 영영 놓치게 될까 하는 불안심리가 작용하니 재미있는 것을 하나라도 더 보고 싶어 곤란해진다.

예전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마냥 아깝게만 느껴졌는데 이왕이면 피할 수 없는 인파 중 한 사람으로서 그냥 즐겨버리자는 마음이 생겼다. 기다림을 참는 자에게 재미가 붙고 소소한 성취감(심리적 해소)도 생긴다. 웨이팅 문화는 어쨌든 흥행이 보증되는 상징이라 금방 사라질 것 같진 않다. 기다림 문화, 요즘 시대에 새로운 즐길 거리를 위해서라면 가끔은 감수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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